“김맛은 씨앗에서”…세노수산, 10년 연구로 해수온난화 이겨낸 ‘돌김 종자’ 개발
“김맛은 씨앗에서”…세노수산, 10년 연구로 해수온난화 이겨낸 ‘돌김 종자’ 개발

일본 세토내해에서 꽃피운 양식 혁신…동해안 김 산업, 돌파구 찾나
‘김은 바다의 반도체’라는 말처럼, 첨단 스마트 양식 산업의 상징이 된 김 산업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경북도가 동해안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돌김 양식’ 프로젝트의 모델로 일본 오카야마현 카사오카시에 위치한 세노수산이 주목받고 있다. 50년간 3대에 걸친 종자 개발의 노하우와 독자적인 양식 시스템으로 성공적인 사업화를 이룬 세노수산은, 해수온난화에도 끄떡없는 ‘환자채(幻紫菜)’ 종자를 통해 일본 전역에서 주문이 쇄도하는 상황이다.
‘바다의 실리콘밸리’ 세토내해, 최적의 김 양식 환경
일본 열도 내부에 자리잡은 세토내해는 규슈, 시코쿠, 혼슈 삼면으로 둘러싸인 내해다. 동서의 조류가 부딪히는 지형적 특성, 그리고 풍부한 영양염류는 김 양식에 최적 조건을 제공한다. 카사오카시 해안의 물빛은 탁한 녹색을 띠는데, 이는 풍부한 플랑크톤 때문이다. 김은 플랑크톤, 질소, 인 등을 흡수하며 성장하기에 이 지역의 해양 생태계는 김의 생육에 유리하다.
1970~80년대 산업화로 인한 적조 피해 이후, 일본 정부는 1973년 ‘세토우치법’을 통해 수질 개선에 나섰다. 엄격한 배수총량 규제와 하수처리시설 확충 등의 조치가 병행되면서 수질이 회복됐고, 이로 인해 친환경 양식 기반이 조성되었다.
“김맛은 씨앗이 결정한다”…3대 가업의 종자 기술 집대성
세노수산은 1970년대 세노 타카유키(妹尾孝之) 씨가 창업한 가족기업이다. 이후 3대에 걸쳐 이어온 양식 기술의 핵심은 독자적인 종묘 개발이다. 특히 ‘환자채’라는 특수 돌김 종자는 고온 난류에도 잘 자라며, 일반 양식종 ‘수사비놀리’보다 훨씬 까다로운 생육 조건을 요구하지만, 품질 면에서는 압도적 우위를 자랑한다.
이 종자는 야키소바, 센베이 등에 쓰이는 고급 김으로, 세노수산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직원들은 매일 현미경으로 씨앗 활착 상태를 확인하며, 바다와 소통하는 듯한 섬세한 관리 과정을 거친다. 김 포자의 크기는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쳐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수차를 돌려 물결을 일으켜 망에 씨앗을 부착시키는 작업조차 반복 검증이 필수다.
세노수산의 타카유키 대표는 “해마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종자를 반복 사용할 수 없다”며 “매년 가장 활성이 좋은 지점의 김을 채취해 블렌딩하고, 품질을 높이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돌김 양식의 해법, ‘변화에 유연한 씨앗’에서 찾다
김 양식에 있어 가장 큰 위협은 해수온난화와 기후변동이다. 이에 따라 내성 높은 종자를 확보하는 것이 업계의 최대 과제가 되고 있다. 세노수산의 전략은 ‘혼합 종자’와 ‘연간 블렌딩’이다. 매년 최상의 성과를 낸 개체에서 우수 씨앗을 수집하고, 이를 미세하게 혼합해 유전적 다양성과 내성을 확보한다.
특히 환자채는 난류가 심한 환경에서도 생존률이 높아, 한국 동해안에서 추진 중인 돌김 양식 모델에도 유효한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다. 세노수산 측은 종묘 기술은 특허와 영업비밀로 보호되고 있지만, 그 개념은 ‘철저한 맞춤형 개량과 환경 적응성 확보’에 있다고 설명한다.
경북도와 포항, 1500년 이어진 세토내해와의 인연
흥미로운 사실은, 세노수산이 위치한 카사오카와 한국 포항은 오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오랑세오녀 설화 속 근기국 유민이 시마네현과 돗토리현을 거쳐 오카야마에 정착한 기록, 그리고 일제강점기 세토내해 출신 어민들의 구룡포 이주 역사는 두 지역이 ‘김’이라는 매개를 통해 역사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1908년 한일어업협정 체결 이후, 구룡포에는 세토내해 어민들을 위한 정착촌이 조성되었고, 포항은 일본 어민들의 주요 어장으로 부상했다. 당시의 풍부한 어족 자원은 ‘신천지’로 불릴 정도였다.
포항 돌김 양식, 세노수산 벤치마킹 시급
경북도는 최근 들어 돌김 양식장 공모 사업을 추진하며 동해안 김 산업의 체질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파고가 높고 수온 변화가 심한 동해 환경은 기존 김 양식의 접근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이때 세노수산의 고내성 종자 기술과 맞춤형 양식 노하우는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정밀한 종자 블렌딩, 환경 맞춤형 양식 설계, 그리고 직원들의 정성 어린 현미경 관찰은 김 산업의 ‘기술농업화’를 상징한다. 한국에서도 이에 대한 연구개발과 인프라 투자가 병행된다면, 해수온난화 시대 속 지속가능한 돌김 산업 육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